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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잉글랜드의 검은 화요일: 1347년 런던 대역병의 참혹한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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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11. 25. 0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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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47년, 재앙의 시작
중세 잉글랜드의 런던은 대역병, 즉 흑사병이 몰아치던 1347년, 상상조차 할 수 없는 혼란과 비극의 중심에 있었습니다. 이 병은 페스트균에 의해 발생한 치명적인 전염병으로, 당시 유럽 인구의 3분의 1을 앗아갔다고 전해집니다. 런던 항구를 통해 전염병이 퍼졌을 때, 사람들은 이를 신의 저주로 받아들였습니다. 오랜 가뭄과 흉년, 그리고 쥐들이 기승을 부리던 그해는 런던 시민들에게 유난히도 혹독한 해였습니다.
전염의 경로와 속도
흑사병은 주로 벼룩이 기생하는 쥐를 통해 퍼졌지만, 당시 사람들은 이를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병이 퍼지던 초기에 사람들은 악취가 병의 원인이라고 믿었고, 이를 막기 위해 거리에 향을 피우고 신성한 의식을 행했습니다. 그러나 병의 전파 속도는 너무나 빨랐고, 런던의 좁고 비위생적인 거리들은 이를 더욱 부채질했습니다. 기록에 따르면, 하루에 수백 명이 죽음을 맞이했으며, 집집마다 검은 깃발이 걸리며 사망을 알렸습니다.
검은 화요일: 가장 끔찍한 날
1347년 10월, 역사 속 ‘검은 화요일’이라 불리던 날이 찾아왔습니다. 단 하루 만에 런던에서 1,0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사망했으며, 이는 당시 도시 전체 인구의 상당수에 해당하는 수치였습니다. 도시 외곽의 공동묘지는 이미 만원이었고, 시신들은 템스 강에 버려지거나 화장을 위한 거대한 화덕으로 옮겨졌습니다. 당시 기록에 따르면, 성 바울 대성당 앞 광장에는 희생자들의 시신이 산처럼 쌓였다고 합니다.
공포와 미신
흑사병은 단순한 질병 이상의 공포로 사람들을 억눌렀습니다. 병의 원인을 알 수 없던 사람들은 유대인, 마녀, 심지어 고양이까지 희생양으로 삼았습니다. 수많은 고양이가 죽임을 당하면서 쥐가 더욱 번식하게 되어 병의 확산을 악화시켰다는 것은 아이러니였습니다. 또한, 거리에서는 극단적 고행으로 죄를 씻으려는 플라겔란트들이 행진하며 피를 흘렸습니다.
사회적 붕괴와 희망
흑사병의 여파는 런던의 사회 구조를 붕괴 직전까지 몰고 갔습니다. 노동력이 부족해지며 영주의 권력이 약화되고 농노들이 점점 자유를 얻는 계기가 되었고, 이로 인해 중세의 봉건제도는 점차 해체되기 시작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비극 속에서도 희망의 씨앗이 뿌려진 것입니다. 런던 대역병 이후 공중보건과 위생에 대한 관심이 커지며, 현대 의학의 초석이 되는 새로운 사고방식이 태동했습니다.
흑사병의 교훈
오늘날 런던의 길거리를 걸으며 그 시절의 흔적을 찾기는 어렵지만, 이 도시의 깊숙한 곳에는 그때의 교훈이 여전히 살아 있습니다. 흑사병은 비극적인 사건이었지만, 이는 인간 사회가 어떻게 위기 속에서 변화를 추구하며 나아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생생한 사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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