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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다보면 역사 시간 순삭

비잔티움 제국의 숨겨진 수호자들: 바랑기아 친위대의 전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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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랑기아 친위대란 무엇인가?


비잔티움 제국의 역사는 그 자체로 장엄하지만, 그 중심에서 황제를 수호했던 바랑기아 친위대는 특별히 흥미롭습니다. 이들은 북유럽 출신의 전사들로 구성된 정예 부대였으며, 용맹과 충성을 대명사로 삼았습니다. 주로 노르드와 슬라브 혈통의 용사들로 이루어진 이 부대는 10세기경 비잔티움 황제 바실리오스 2세에 의해 창설되었습니다.

바랑기아 친위대의 기원


10세기 말, 러시아 키예프 공국의 블라디미르 대공은 비잔티움 제국과 동맹을 맺으며 많은 노르드 전사들을 콘스탄티노플로 보냈습니다. 이들은 곧 황제를 지키는 엘리트 부대로 성장하였습니다. 바랑기아라는 이름은 고대 노르드어에서 유래했으며, '맹세를 한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그들의 충성심과 무용담


바랑기아 친위대는 전장에서의 무용담으로 유명했습니다. 특히 1014년, 바실리오스 2세가 불가리아 군을 상대로 벌인 클라이디온 전투에서 이들의 활약은 전쟁의 승패를 결정지었습니다. 강력한 도끼와 무거운 방패를 든 바랑기아 전사들은 적들에게 공포의 대상이었습니다.

클라이디온 전투의 비화


당시 불가리아의 군대는 견고한 방어선을 구축했으나, 바랑기아 전사들은 도끼로 방어벽을 무너뜨렸습니다. 이들은 황제의 명령 아래 적의 지휘관을 포로로 잡아오는 임무를 완벽히 수행하며 비잔티움의 승리를 가져왔습니다.

황궁에서의 역할


바랑기아 친위대는 단순히 전사로서만 활동하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황궁의 가장 내밀한 곳까지 접근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았으며, 황제의 친위 경호원으로서 특별한 임무를 맡았습니다. 황제의 전용 침실을 수호하거나, 중요한 국서를 운반하는 등의 업무도 맡았습니다.

존재를 위협받은 순간


바랑기아 친위대의 역사는 순탄치만은 않았습니다. 11세기 말, 십자군의 콘스탄티노플 약탈 사건에서 이들의 역할은 매우 제한적이었습니다. 많은 전사들이 죽거나 도망쳤고, 친위대는 약화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곧 다시 조직력을 회복하며 비잔티움 제국의 몰락까지 살아남았습니다.

바랑기아 친위대의 전설적인 유산


현대 역사학자들에게 바랑기아 친위대는 단순한 용병 집단이 아니라, 북유럽과 비잔티움 문화의 독특한 융합을 보여주는 사례로 평가받습니다. 오늘날 노르웨이, 스웨덴, 러시아 등지에서는 이들의 이야기가 전설로 남아 있습니다. 특히 노르드 사가에서는 이들의 무공과 충성을 찬양하는 노래들이 전해져 내려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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