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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초원의 전설적인 여왕, 톰리스
고대 유라시아 대초원에서는 강인한 전사들로 구성된 스키타이 부족이 널리 알려져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빛났던 인물은 여왕 톰리스였습니다. 그녀는 대초원의 거친 환경 속에서 민족을 이끌었고, 적에게도 두려움을 심어주었습니다. 톰리스의 전설은 그녀가 고대 페르시아 제국의 창시자인 키루스 대왕과 맞서 싸운 일화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톰리스와 스키타이족의 배경
스키타이족은 유목민으로서 기마술과 궁술에 능했던 부족입니다. 그들의 땅은 현재의 카자흐스탄, 우크라이나, 러시아 남부에 이르는 광활한 지역을 포함했습니다. 스키타이족은 금속공예와 무역에서도 뛰어난 기술을 자랑했으며, 유목민들 사이에서 위상을 확립했습니다.
톰리스는 이들의 지도자로서 탁월한 정치적 감각과 군사적 재능을 갖춘 여왕이었습니다. 그녀는 평등과 전사의 미덕을 강조하며 부족민들에게 존경받았습니다.
키루스 대왕과의 갈등
기원전 6세기, 아케메네스 왕조의 페르시아 제국은 키루스 대왕의 지휘 아래 급격히 팽창하고 있었습니다. 키루스는 대초원의 풍부한 자원과 전략적 가치를 탐내며 스키타이족에 대한 정복을 시도했습니다. 그는 톰리스에게 결혼을 제안하며 화친을 가장했지만, 이는 명백히 그녀를 굴복시키기 위한 속임수였습니다.
톰리스는 이를 단호히 거절했고, 키루스는 결국 군대를 이끌고 스키타이 땅으로 진군했습니다. 톰리스는 유목민의 특성을 살려 유연한 전술로 키루스의 군대를 지치게 했습니다.
강가에서 벌어진 대격돌
최후의 전투는 시르다리야 강변에서 벌어졌습니다. 톰리스는 페르시아 군대가 스키타이족을 궁지에 몰아넣기 위해 함정을 썼다는 정보를 입수했습니다. 페르시아군은 일부러 술과 음식을 남긴 채 후퇴했고, 스키타이 군대가 이 함정에 빠질 것이라 예상했습니다. 그러나 톰리스는 이를 간파하고 역으로 페르시아군의 약점을 노렸습니다.
결국 스키타이족은 기습을 통해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었고, 키루스 대왕은 이 전투에서 사망했습니다. 톰리스는 그의 시신을 찾아 복수를 다짐하며 그가 탐욕 때문에 죽음을 맞이했다는 교훈을 후대에 남겼습니다.
톰리스의 유산
톰리스의 승리는 단순히 스키타이족의 승리가 아니라, 고대 유라시아에서 여성 지도자의 역량을 증명한 사례로 기록됩니다. 그녀의 용맹은 당시의 관습과 한계를 뛰어넘었으며, 그녀의 이름은 오늘날에도 대초원의 전설로 남아 있습니다.
톰리스의 이야기는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도 다양한 문화권에서 회자되며, 유라시아의 풍부한 역사와 전통을 상징하는 인물로 평가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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