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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다보면 역사 시간 순삭

테러의 도시, 카르타헤나: 스페인 제국의 숨겨진 비밀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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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의 카리브 요새, 카르타헤나


카르타헤나는 16세기에서 18세기까지 스페인 제국의 가장 중요한 카리브 해 요새 중 하나였다. 스페인은 이곳을 통해 남미와 중앙아메리카의 귀중한 자원을 유럽으로 실어 날랐으며, 이로 인해 카르타헤나는 해적과 적국들의 표적이 되었다. 특히 1741년의 카르타헤나 공방전은 대서양의 세력 균형을 바꾸는 중요한 사건이었다.

영국의 대규모 침공과 '버논의 굴욕'


1741년, 영국 제독 에드워드 버논은 카르타헤나를 함락시키기 위한 대대적인 공격을 감행했다. 그는 약 180척의 배와 27,000명의 병력을 이끌고 왔으나, 스페인의 방어는 예상보다 훨씬 강력했다. 스페인의 장군 블라스 데 레소는 병력이 훨씬 열세임에도 불구하고, 수비에 성공하며 카르타헤나를 지켜냈다. 이 전투는 '버논의 굴욕'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게 되었고, 영국은 막대한 피해를 입고 후퇴할 수밖에 없었다.

블라스 데 레소의 전략


이 전투에서 블라스 데 레소는 단 6척의 배와 3,000명의 병력으로 영국군의 침공을 막아냈다. 레소는 항구의 입구를 봉쇄하고, 질병에 시달리던 영국 병사들을 더욱 곤경에 빠뜨리기 위해 질병 전파 전략을 활용했다. 그의 용기와 지략 덕분에 카르타헤나는 스페인 제국의 손에 남아 있을 수 있었다.

해적들과의 끊임없는 전투


카르타헤나는 영국뿐 아니라 수많은 해적들의 공격에도 시달렸다. 특히 프랑시스 드레이크와 같은 악명 높은 해적들은 이 요새를 여러 차례 공격했다. 1586년, 드레이크는 결국 카르타헤나를 함락시키고 엄청난 양의 보물을 약탈해 갔다. 이 사건 이후 스페인은 이 도시를 강화하는데 막대한 자금을 투입했다.

도시를 지키기 위한 희생


카르타헤나의 방어를 위해 스페인은 도시 전체를 요새화했다. 산 펠리페 데 바라하스 성은 그 대표적인 예로, 해적들과 적국의 침공을 효과적으로 막기 위해 건설되었다. 이 성은 오늘날까지도 남아 있어, 그 당시에 있었던 피비린내 나는 전투의 흔적을 보여주고 있다.

스페인 제국의 쇠퇴와 카르타헤나의 운명


18세기 후반, 스페인 제국은 점차 약해지기 시작했다. 나폴레옹 전쟁과 스페인 본토의 혼란으로 인해 카리브 지역의 지배력이 감소하면서, 카르타헤나도 그 중요성을 점차 잃어갔다. 하지만 이 도시는 여전히 남미 해방 전쟁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시몬 볼리바르의 독립운동에서도 전략적 요충지로 활용되었다.

현대의 카르타헤나


오늘날 카르타헤나는 그 화려한 요새와 역사적인 유산 덕분에 전 세계 관광객들이 찾는 도시가 되었다. 이 도시는 과거의 전투와 침략의 역사를 간직한 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보호받고 있다. 과거 해적과 제국의 전쟁터였던 이 도시는 이제 평화롭고 아름다운 해안 도시로 변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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