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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키타이와 톰리스 여왕
기원전 6세기, 유럽과 아시아 대륙을 가로지르며 광대한 영토를 지배한 유목 민족 스키타이는 그 강인함과 전투 능력으로 유명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주목받는 인물이 있었으니, 바로 톰리스(Tomyris) 여왕이다. 그녀는 스키타이의 한 부족을 이끄는 강력한 지도자로, 당시 세계 최강국 중 하나였던 페르시아 제국의 키루스 2세와 맞서 싸웠다.
키루스 2세와의 대립
톰리스 여왕과 키루스 대왕의 대립은 역사에 길이 남을 만큼 치열하고 극적이었다. 페르시아 제국은 급속히 팽창하며 주변의 많은 지역을 정복하고 있었고, 키루스는 그 성공을 기반으로 더 많은 땅을 손에 넣고자 했다. 그의 다음 목표는 스키타이의 톰리스가 다스리던 지역이었다.
키루스는 외교적으로 접근해 결혼을 제안했으나, 이는 사실상 톰리스의 왕국을 병합하려는 의도였다. 하지만 톰리스는 이러한 속임수를 간파하고 단호하게 거절했다. 그러자 키루스는 무력을 동원하여 톰리스를 굴복시키려 했다.
페르시아와의 전쟁
페르시아 군대는 압도적인 규모와 강력한 무기력을 자랑했지만, 톰리스는 그들의 공격에 굴복하지 않았다. 스키타이 군은 지형을 이용한 게릴라전과 말 위에서의 전투 기술로 대응했다. 하지만 키루스는 전술적인 함정을 설치해 스키타이 군을 유인하려 했고, 이에 톰리스의 아들 스파르가피스(Spargapises)가 페르시아군에게 포로로 잡히고 만다.
키루스는 스파르가피스를 인질로 삼아 톰리스를 협박했으나, 그녀는 이에 굴복하지 않았다. 오히려 스파르가피스는 자신의 포로 신세를 비관해 자결했고, 톰리스는 아들의 죽음에 분노하며 더욱 강하게 페르시아 제국에 맞서 싸우기로 결심한다.
결전의 순간
마침내 톰리스와 키루스의 군대는 결전을 벌였다. 톰리스는 페르시아의 전술을 간파해 그들이 설치한 함정을 피했고, 스키타이 군은 용맹하게 싸워 페르시아군을 괴멸시켰다. 전투가 끝난 후 톰리스는 키루스 대왕이 전사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톰리스는 키루스의 시신을 찾은 후, 그의 머리를 잘라 피로 가득 찬 가죽 부대에 넣었다고 한다. 이는 그녀가 키루스에게 했던 약속, 즉 그의 '피를 마시게 하겠다'는 말을 실현한 것이었다. 이 장면은 역사 속에서 잊히지 않는 강렬한 이미지로 남아 있다.
역사 속에서의 톰리스
톰리스 여왕은 그 용기와 결단력으로 인해 고대 역사에서 여전사의 상징으로 남아 있다. 그녀는 당대 최강의 군주 중 하나인 키루스를 물리친 여왕으로, 스키타이의 독립을 지켜냈을 뿐만 아니라, 여성이 정치적 지도자로서 얼마든지 성공할 수 있음을 보여준 인물이다.
그녀의 이야기는 오늘날에도 전해지며, 전 세계 많은 여성들에게 영감을 주는 강력한 상징으로 자리 잡고 있다. 역사 속에서 흔히 남성들이 차지하던 자리에, 톰리스는 자신의 이름을 새기며 불멸의 전사로 기억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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