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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다보면 역사 시간 순삭

바다를 지배한 영국 해적들의 숨겨진 세계: 헨리 에브리와 그들의 어둠 속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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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해적의 황금기와 헨리 에브리의 등장


17세기 말, 대서양과 인도양을 넘나들며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은 해적들의 황금기가 있었다. 그 중에서도 헨리 에브리(Henry Every)는 오늘날까지 '해적의 왕'으로 불리며 전설처럼 전해지는 인물이다. 에브리는 당시로서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엄청난 재산을 손에 넣고, 이후 그의 행방은 미궁에 빠졌다. 에브리의 이야기는 단순한 해적질이 아닌 정치와 무역, 권력의 어두운 이면을 엿볼 수 있는 흥미로운 일화들로 가득 차 있다.

헨리 에브리의 시작과 첫 번째 배반


헨리 에브리는 원래 영국 해군에서 근무하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는 점차 상업적 이익을 쫓아 해적이 되기로 결심한다. 1694년, 에브리는 '찰스 2세 호'라는 군함의 선원으로 탑승했을 때, 인도양에서의 거대한 이익을 노리고 대담한 반란을 일으켰다. 그는 선장을 몰아내고 배를 장악한 뒤 '팬시 호(Fancy)'로 개명하고 해적질에 나섰다. 이 배반은 단순한 사건이 아니라 에브리가 본격적으로 해적 생활을 시작하는 계기가 되었다.

역사상 가장 거대한 약탈: 무굴 제국을 털다


1695년, 에브리와 그의 해적단은 인도양에서 거대한 무굴 제국의 함대를 공격했다. 이 함대는 황제 아우랑제브의 보물선이 포함된 엄청난 상선을 보호하고 있었고, 그 배에는 무굴 제국의 공주도 타고 있었다. 에브리는 이 함대를 완벽하게 제압하고 엄청난 양의 보석과 금을 손에 넣는다. 이는 역사상 가장 거대한 해적 약탈 사건으로 기록되었으며, 에브리는 이 약탈로 인해 순식간에 악명 높은 인물이 되었다. 이 사건은 영국과 무굴 제국 사이의 외교적 위기를 초래하기도 했다.

어디로 사라졌나: 에브리의 흔적 없는 도망


에브리는 보물을 챙긴 후, 그의 해적단과 함께 사라졌다. 그가 도망친 곳과 그의 최후는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아있다. 일부 기록에 따르면 에브리는 그의 부하들과 함께 바하마나 마다가스카르로 도망쳤다는 이야기가 있지만, 확실한 증거는 없다. 심지어 에브리가 이름을 바꾸고 영국 본토에서 은둔 생활을 했다는 설도 있다. 그의 사라짐은 그를 더욱 신비로운 인물로 만들었고, 그의 보물이 아직도 어딘가에 묻혀 있을 것이라는 소문은 오늘날까지도 전해진다.

해적의 왕, 그러나 배신당한 동료들


흥미롭게도, 에브리의 부하들은 그의 배반에 대해 불만을 품고 있었다. 에브리는 무굴 제국의 보물을 얻고 난 뒤, 동료들에게 약속한 것보다 적은 몫을 나눠주었고, 많은 이들이 그를 불신하게 되었다. 몇몇 해적은 결국 체포되었고, 런던에서 공개 처형을 당했다. 그러나 에브리는 그들과 달리 끝까지 도망치는 데 성공했으며, 그의 최후에 대한 명확한 기록이 없는 것은 그가 남긴 또 다른 수수께끼다.

영국 정부와 해적의 관계


헨리 에브리의 이야기는 단순한 해적 모험담에 그치지 않는다. 당시 영국 정부와 해적들 간의 미묘한 관계를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이기도 하다. 영국은 해적들을 공식적으로는 범죄자로 간주했으나, 실제로는 해적들이 다른 유럽 국가들의 상선을 공격할 때 이를 눈감아주거나 심지어 지원하기도 했다. 해적들은 영국의 해상 제국 건설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고, 특히 스페인, 포르투갈 등과의 경쟁에서 큰 힘을 발휘했다.

에브리의 전설이 남긴 유산


헨리 에브리는 단순히 한 명의 해적으로 끝난 것이 아니다. 그의 이야기는 수많은 소설, 영화, 게임의 모티브가 되었으며, 해적이라는 존재가 단순히 강도나 약탈자로만 보이지 않게 하는 복합적인 면모를 부각시켰다. 에브리는 영국 해적의 상징이자, 바다를 누비며 거대한 부를 쌓고도 완벽히 사라져버린 인물로 기억된다. 그의 전설은 오늘날까지도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며 '해적의 왕'이라는 타이틀을 더욱 견고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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