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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다보면 역사 시간 순삭

대담한 파라오 하셉수트: 고대 이집트 최초의 여성 파라오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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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셉수트, 여성 파라오의 길을 열다


고대 이집트에서 여성이 파라오의 자리에 오른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으나, 그 불가능을 가능케 한 인물이 있었습니다. 바로 제18왕조의 하셉수트입니다. 그녀는 태양신 아문의 사제이자 세손자였던 투트모세 2세의 왕비로 시작하여, 남편이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후 어린 계승자 투트모세 3세의 섭정으로 권력을 잡았습니다. 하지만 하셉수트는 섭정에 그치지 않고 스스로를 파라오로 선언하며, 여성 최초의 파라오로서 놀라운 통치 시대를 열었습니다.

상징을 넘어, 남성의 모습을 취한 파라오


하셉수트는 자신을 남성 파라오와 다름없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 파라오의 전통적 복장을 차용하였습니다. 그녀는 수염 모양의 장신구인 네메스 헤어드레스와 의례적인 가짜 턱수염을 착용하였고, 자신의 조각상에서는 때로 남성의 신체로 묘사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행보는 그녀가 단순히 여성 섭정이 아닌 진정한 파라오임을 선언하는 상징적 행동이었죠.

신전과 기념물: 대담한 건축 프로젝트


하셉수트의 통치 기간 동안 이집트 전역에는 기념비적인 건축물이 세워졌습니다. 그녀의 대표적인 유산 중 하나인 데르 엘바하리 신전은 현재까지도 그 웅장함과 정교함으로 유명합니다. 이곳은 계단식 구조로 이루어진 이집트 건축의 진수를 보여주며, 벽에는 하셉수트가 정당한 통치자임을 주장하는 장면들이 새겨져 있습니다. 아문 신의 축복을 받은 통치자로서 자신의 신성한 위치를 강조한 것입니다.

대외 무역과 풍요로웠던 시기


하셉수트는 외교와 무역에 있어 혁신적인 리더였습니다. 그녀는 푸나이트 원정을 통해 현재의 에리트레아 지역과 활발한 교역을 이어갔으며, 이를 통해 금, 상아, 향료 등을 이집트에 들여왔습니다. 이러한 외교적 성과는 이집트를 더욱 부유하게 만들었고, 하셉수트의 통치가 평화와 번영의 시대였음을 뒷받침하는 증거로 남아 있습니다.

남겨진 의문: 그녀의 이름을 지우려 했던 이유


하셉수트의 사후, 그녀의 후계자인 투트모세 3세는 하셉수트의 흔적을 지우려 노력했습니다. 기념물에서 그녀의 이름과 흔적을 제거하고, 파라오 목록에서 그녀를 배제한 것입니다. 일부 학자들은 이를 정통성 회복을 위한 시도로 해석하고, 다른 이들은 투트모세 3세가 자신의 파라오 자리를 다지기 위해 그렇게 했다고 주장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든, 하셉수트의 유산은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도 이집트 역사의 중요한 부분으로 남아 있습니다.

잃어버린 파라오의 무덤과 발견


한때 잊혀졌던 하셉수트의 무덤은 1903년 이집트학자 하워드 카터에 의해 재발견되었습니다. 당시 그녀의 미라가 발견되지는 않았으나, 2007년 고고학자들이 그녀의 치아를 통해 신원을 확인하며 하셉수트의 미라가 결국 발견되었음을 확인했습니다. 그녀의 무덤과 신원 확인은 고대 이집트 연구에 있어 중요한 발견으로 평가되며, 하셉수트가 남긴 강력한 여성 통치자로서의 유산을 다시 조명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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