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읽다보면 역사 시간 순삭

포로 왕, 요한네스와 이베리아 반도의 마지막 무어 정복자

바이낸스(₿) 수수료 평생 20% 할인받는 링크로 가입하기! 🔥 (클릭!)

반응형

무어인의 위대한 마지막 왕국

이베리아 반도, 오늘날의 스페인과 포르투갈에 해당하는 이 땅은 중세에 걸쳐 무어인, 크리스천, 유대인이 공존하며 다문화적 색채를 띠던 곳이었습니다. 특히 무어인이 이끄는 그라나다 왕국은 무려 800년 동안 이베리아 반도 남쪽을 장악했으며, 예술, 건축, 과학 분야에서 눈부신 발전을 이루었습니다.

13세기 이후로 유럽의 크리스천 세력은 ‘레콩키스타(Reconquista)’라는 이름으로 무어인들을 남쪽으로 몰아냈고, 결국 무어인의 마지막 보루였던 그라나다가 최후의 저항을 펼칩니다. 이 왕국을 지키던 인물이 바로 무어인의 마지막 왕 요한네스(Johannes, 이슬람식 이름: 보아브딜)였습니다.

보아브딜의 비극적 운명

보아브딜은 1460년대 중반 그라나다 왕국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치세는 복잡한 정치적 음모와 반란의 연속이었으며, 아버지와 삼촌 간의 권력 다툼에서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어린 나이에 왕이 된 보아브딜은 치열한 내전 속에서 외세와 동맹을 맺어야 했고, 이 과정에서 아라곤의 페르디난드와 카스티야의 이사벨라 부부와의 불안한 협정을 맺게 됩니다. 하지만, 협정은 그의 왕국을 보호하기 위한 최후의 선택이었으나 그의 운명에 치명적인 결과를 불러옵니다.

아쉬움의 눈물, 마지막 왕의 떠남

보아브딜은 1492년 페르디난드와 이사벨라에게 굴복하고 결국 왕국을 포기합니다.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그는 그라나다를 떠나면서 산꼭대기에서 마지막으로 도시를 바라보고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그의 어머니가 “남자답게 지키지 못한 왕국을 위해 이제 와서 눈물을 흘리느냐”라며 한탄했다고 알려진 이 일화는 오늘날까지 전해지는 슬픈 이야기로 남아 있습니다.

포로 왕 요한네스의 마지막 세월

요한네스는 떠나온 그라나다를 다시 볼 수 없었습니다. 그의 가족은 아프리카로 향했지만, 이슬람 세계 내에서도 그의 입지는 불안정했습니다. 페르디난드와 이사벨라는 그에게 보호를 약속하였으나, 요한네스는 모로코에 정착하며 한때 그의 왕국을 되찾으려는 시도를 했으나 성공하지 못합니다. 그는 이후 실질적인 정치적 활동에서 물러났으며, 포로 왕으로 생을 마감하게 되었습니다.

역사에 남은 유산

보아브딜과 그라나다의 몰락은 이베리아 반도의 마지막 무슬림 왕국이 사라진 순간이었으며, 그라나다의 궁전 알람브라와 같은 유적은 오늘날 무어인의 찬란했던 문화적 유산으로 남아 있습니다. 요한네스는 이베리아 반도에서 무어인의 종말을 상징하며, 그라나다와 함께 잃어버린 문화의 비극적 상징이 되었습니다.
반응형